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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해체신서(解體新書)
No.013
요코야마 다이칸
Illustration:도요시마 소라
Text:고다 나오코
근대 일본화의 거장 요코야마 다이칸은 메이지 시대의 시작과 더불어 태어나 메이지, 다이쇼, 쇼와 시대를 거치며 전통과 독창 사이에서 항상 새로운 회화 표현을 획득하기 위해 끝없이 분투했습니다. 스승 및 동료 화가들과 고생을 거듭한 후 이윽고 다이칸은 일본 미술계를 견인하는 존재가 되어 갔습니다.
요코야마 다이칸(1868-1958)
메이지 원년, 히타치노쿠니 미토(현재의 이바라키 현 미토 시) 출생. 고전에서 배우며 시대에 맞는 주제와 표현을 추구하여 독자적 회화 세계 확립. 대표작에 <무아(無我)>, <소상팔경(瀟湘八景)>, <생생유전(生生流轉)>, <영봉비학(霊峰飛鶴)> 등 다수. 1937년, 제1회 문화훈장 수상.

측량과 지도 제작을 생업으로 하는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가진 다이칸은 처음에는 건축의 길을 가고자 했다. 하지만 관립 미술가 양성기관인 도쿄 미술학교 창립 이야기가 들려오자 화가의 길로 마음이 움직였다. 이때 처음으로 일본화 붓을 잡고 1889년에 이 학교의 제1회 입학생이 되었다.

측량과 지도 제작을 생업으로 하는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가진 다이칸은 처음에는 건축의 길을 가고자 했다. 하지만 관립 미술가 양성기관인 도쿄 미술학교 창립 이야기가 들려오자 화가의 길로 마음이 움직였다. 이때 처음으로 일본화 붓을 잡고 1889년에 이 학교의 제1회 입학생이 되었다.

도쿄 미술학교 초대 교장 오카쿠라 덴신(1863-1913)의 지도로부터 다이칸은 빛과 공기를 표현할 때 윤곽선을 사용하지 않는 실험적 수법을 실천했다. 당시 일본 화단에서는 <몽롱체(朦朧體)>라는 혹평을 받았지만 다이칸은 히시다 슌소(1874-1911)와 시모무라 간잔(1873-1930)과 함께 일본화 혁신에 공헌했다.

도쿄 미술학교 초대 교장 오카쿠라 덴신(1863-1913)의 지도로부터 다이칸은 빛과 공기를 표현할 때 윤곽선을 사용하지 않는 실험적 수법을 실천했다. 당시 일본 화단에서는 <몽롱체(朦朧體)>라는 혹평을 받았지만 다이칸은 히시다 슌소(1874-1911)와 시모무라 간잔(1873-1930)과 함께 일본화 혁신에 공헌했다.

다이칸은 술고래로 유명해 세끼 식사는 술과 약간의 안주가 중심이었고 전성기 주량은 하루 한 되였다고 한다. 1956년, 잠시 중태에 빠졌지만 빨대로 술을 한 모금 마시고 회복하고 그 2년 후 89세로 천수를 다할 때까지 수십 점의 그림을 더 그렸다.

다이칸은 술고래로 유명해 세끼 식사는 술과 약간의 안주가 중심이었고 전성기 주량은 하루 한 되였다고 한다. 1956년, 잠시 중태에 빠졌지만 빨대로 술을 한 모금 마시고 회복하고 그 2년 후 89세로 천수를 다할 때까지 수십 점의 그림을 더 그렸다. <끝>

감수: 요코야마 다이칸 기념관

도요시마 소라
일러스트레이터. 1980년 이바라키 현 출생. 팔레트 클럽 스쿨 졸업.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잡지, 광고, WEB, 어패럴을 중심으로 활동 중.
http://soratoyoshima.net